탈육식과 동물해방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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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ate Added13 March 2024, 21:03
📝 내용 발췌
[01] 불편하고 불쾌한 운동이 필요한 이유
동물에 대한 학대라는 점에서 똑같이 인간의 잔혹함을 드러내는 장면이라고는 해도, 고통 받는 야생동물이나 반려동물을 구출하고 보호하는 인간의 모습에서는 ‘휴머니즘’과 종적 우월감을 느끼지만 식량동물의 경우에는 그럴 수 없어진다. 소, 돼지, 닭은 자연세계의 동물과 달리 취급된다. 자연의 동물들은 신의 창조물이지만 소, 돼지, 닭은 인간이 만든 인공물이며, 무엇보다 사유재산으로 취급된다. 그러니 이들을 구출하는 것은 사유재산에 대한 침해이며 영업방해가 된다. 인간과 동물 간에 설정된 보호-피호, 지배-피지배의 일방적 관계만 아니라 생명의 상품화를 용인하는 자본주의적 상품생산관계에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하고 그 관계를 전복시켜 상호적이고 평등한 관계를 만들려고 하기 때문이다. ‘식량동물’을 상품의 원료가 아니라 동물존재 자체로, 즉 살아있는 생명 존재로 대하는 것은, 그들이 자신의 삶을 가진 존재라는 것을 부정할 때에만 가능했던 일, 즉 지금까지 허용되어온 감금, 학대, 학살을 더 이상 정당화할 수 없게 만든다. 동물해방론이자 새로운 생명사상으로서의 비거니즘은 육식자본주의와 가부장제 시스템 자체에 대해 근본적 문제를 제기한다. 자본과 권력은 시장질서를 위협하지 않는 친환경 소비자로서의 채식주의자는 환영하지만 자본주의적 식품생산 체제에 맞서는 동물해방의 실천론으로서의 채식주의는 억압한다.
[02] 시장과 기술이 인도하는 대체상품이 탈육식의 대안이 될 수 있을까
그동안 자본은 개인들에게 각자의 선택권을 주면서 구조적 문제를 개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처럼 속이고, 생명의 권리를 소비자의 권리로 치환하는 논리로 끊임없이 우리를 속여 왔다. 친환경 상품에도 ‘레벨’이 있고 계급적 차이가 있듯이 비건 소비도 마찬가지다. 정크 비건을 하든 에코 비건을 하든 시장은 각자의 형편에 따라 얼마든지 다양한 선택지를 줄 것이다. 우리가 요구해야 하는 건 진열대의 상품을 선택할 권리가 아니라 제대로 먹고 살 수 있는 시간과 관계에 대한 권리다. 채소도 공장식으로 생산하는 자본주의적 농업생산체제에선 채식도 폭력 없이 평화로운 것만은 아니다. 한겨울의 신선 채소를 키우기 위해 비닐하우스엔 밤낮없이 전기가 흘러야 하고, 하우스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들은 겨울에는 얼어 죽고 여름에는 쪄죽는다. 자본이 생명으로부터 이윤을 짜내는 데는 동물과 식물을 가리지 않는데, 각자가 식단을 동물성을 식물성으로 대체하는 것이 과연 생명을 쥐어짜서 이윤을 추출하는 폭력의 사슬을 멈출 수 있을까? 그건 현재의 생산체제와 성장의 경제를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고도 에너지원을 화석연료에서 재생에너지로 바꾸는 것만으로 기후위기를 막을 수 있다고 말하는 녹색성장론과 마찬가지 논리다.